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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新골목길 탐구] 청담동

광주광역시 빛고을전세버스 2014. 12. 8. 05:21

허세와 과시욕망의 이중주가 뻥~ 풍선 터지듯 사라져갔던 동네
그 시절을 추억하며 다시 몰려든다
이젠 사치보다 가치!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따른다. 화려한 외관만큼이나 실속 없는 허영의 상징으로도 군림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최근 들어 예전처럼 으리으리함을 뽐내기보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앞세우며 고객과 소통하려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따른다. 화려한 외관만큼이나 실속 없는 허영의 상징으로도 군림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최근 들어 예전처럼 으리으리함을 뽐내기보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앞세우며 고객과 소통하려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지금, '청담동'을 이야기한다는 건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구문(舊聞)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서울 한남동, 경리단 길과

홍대 인근 서교동, 연남동에서 서촌을 아울러 성북구 어귀까지 구석구석 발 디딜 틈 없는 '강북 전성시대' 아닌가.

'한때' 청담동을 잘 알았다는 이들의 반응도 대체로 이렇다.

2000년대 서울 청담동의 '스타 셰프'로 이름 날렸던 박찬일씨의 말을 들어보자. "물질적 고급을 앞세운 천박한 자본주의와 통째로 이식한 우아한 유럽식 문화 사이사이 '쌈마이(3류) 티'가 잼처럼 발린 동네요.

그러다 정신 차린 거죠. 차 키 맡기고 폼 잡으면서 돈을 주고 먹는 허세가 얼마나 허망한지,

1만원 수퍼마켓 와인인 줄도 모르고 10만원을 내면서 자랑 삼았던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청담동을 돈 벌게 해 준 건 거기에 뭐라도 있는 줄 알고 자기 카드로 거품 덩어리 영수증을 끊었던 평범한 직장인들이란 말입니다. 작전 세력에 빠진 개미 떼처럼. 비싼 수업료였죠. 청담동 학습 효과로 이젠 실용적인 분위기로 가는 거예요." 그 스스로도 "과거 청담동이란 일종의 ('잘나간다'는) '계급적 선언'이었고,

그런 청담동에 있었던 건 나름의 허세였다"고 고백한다.

청담은 애증의 공간이다. 손가락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를 풍미한 오렌지족의
최근 작은 변화가 감지됐다.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풀 꺾인 부동산도 한몫했다.

올 초 청담동에 아메리칸 바비큐 전문점 올댓밋을 연 이종서(44) 셰프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그는 미국에서 20년간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다 음식에 반해 셰프의 길로 들어섰다.

"경리단 한남동도 알아봤지만 권리금이나 가게세에서 청담동을 웃돌기도 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어릴 적 놀던 청담동에서 친구들 아지트 삼아 마음 편히 일하고 싶었다."

청담동 부흥을 내거는 이들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라운지 바 'y1975'가 그렇다. 22년차 청담동의 터줏대감 카페 '고센' 사장이 열었다. 우연하게도 지금의 '강남구 청담동'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도 1975년이다. 한때 외면받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뒷길을 2~3년 사이 가장 '핫'하게 만든 중심에 라운지 바 '글램'이 있었던 걸 감안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미국 뉴욕의 식당 '정식'을 통해 미슐랭 투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 '정식당'도 최근 청담동 '카페 74' 옆에 둥지를 틀었다. 청담동 추억의 한 페이지였던 '그랜드 하루에'가 퇴장한 자리에 자리 잡은 몰트바&스테이크 전문점 '볼트82'가 눈에 띈다. 청담동 황금기 끝물을 경험했다는 1982년생 마서우 대표가 "사치가 아닌 가치로 인정받는 청담동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며 얼마 전 문을 열었다.산실이었던 이웃 동네 압구정동과도 또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 뒤 2000년 초반 누구나 '암흑기'를 걸을 때 오히려 청담동은 가장 황금기였다. 해외 유학파 출신 초창기 '청담 피플'은 향수 어린 외국의 모습을 청담동에 재현해냈다. '물갈이'된 그들에게 중요한 건 폐쇄성과 희소성이었다. '퓨전' '브런치' 등 용어를 비롯해 스타 셰프가 배출되며 지금 같은 '미식 문화'도 청담동을 통해 소개됐다. 각종 매체엔 '신귀족층'이라는 조어가 등장하고 '계급화'가 끼어들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도 심심치 않게 인용됐다. "교육 자본과 문화 자본, 사회관계 자본을 획득한 이들이 구별 짓기를 통해 스스로를 강화한다. 문제는 이것이 세습된다는 것이다."

	[新골목길 탐구] 청담동

또 한 번의 금융 위기. 분칠을 걷고 '민낯'이 드러났다. 실속이 허영을 앞섰다. 유럽 카페 문화를 통째로 이식한 하루에(1996년), 발레 파킹 시대를 연 카페 드 플로라(1997), 커피 미학(1998)과 퓨전 레스토랑의 대명사 시안(1998) 등 이른바 '원조'도 사라진 지 오래다. 청담동은 그렇게 기억 속에 저장되는 듯싶었다. 진공이 펑 터져버린 동네처럼 공동화(空洞化)돼갔다.

최근 작은 변화가 감지됐다.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풀 꺾인 부동산도 한몫했다. 올 초 청담동에 아메리칸 바비큐 전문점 올댓밋을 연 이종서(44) 셰프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그는 미국에서 20년간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다 음식에 반해 셰프의 길로 들어섰다. "경리단 한남동도 알아봤지만 권리금이나 가게세에서 청담동을 웃돌기도 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어릴 적 놀던 청담동에서 친구들 아지트 삼아 마음 편히 일하고 싶었다."

청담동 부흥을 내거는 이들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라운지 바 'y1975'가 그렇다. 22년차 청담동의 터줏대감 카페 '고센' 사장이 열었다. 우연하게도 지금의 '강남구 청담동'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도 1975년이다. 한때 외면받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뒷길을 2~3년 사이 가장 '핫'하게 만든 중심에 라운지 바 '글램'이 있었던 걸 감안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미국 뉴욕의 식당 '정식'을 통해 미슐랭 투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 '정식당'도 최근 청담동 '카페 74' 옆에 둥지를 틀었다. 청담동 추억의 한 페이지였던 '그랜드 하루에'가 퇴장한 자리에 자리 잡은 몰트바&스테이크 전문점 '볼트82'가 눈에 띈다. 청담동 황금기 끝물을 경험했다는 1982년생 마서우 대표가 "사치가 아닌 가치로 인정받는 청담동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며 얼마 전 문을 열었다.

출처 :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
글쓴이 : ♣크로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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